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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힘내세요

지난 4월 뜬끔 없이 아버지가 위암이라는 걸 알았다. 그전에 징후가 여럿이었지만 누구도 그게 암이라는 것에 대한 징조인지는 몰랐다.
처음 위암이라는 걸 알려드렸을때 아버지는 오랜 신앙생활에서 비롯된 특유의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셨다.
수술을 받으시고도 농담도하시고 재활과 치료에 의지를 불태울 만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튼튼하셨다.
다만 빈혈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게 조금 어려움이었지 나이에 비해 체지방도 적고, LDL같은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고, 근육량도 많으신 건강하신 몸이었다. 그래서 주치의는 수술이 잘 되었지만 항암치료를 권했다.

수술을 전후로 아버지는 10KG이 빠졌다.
5월 6일 어버이 날을 앞두고 1차 항암제 투여. 병원에서 5시간을 기다리고 7시간 동안 주사제를 맞았다.
그리고 소문과 다르게 항암제의 부작용이 없어서 아버지나 가족들 모두 다행으로 여겼다.
아침 저녁으로 TS-1 70mg 을 복용한지 1주일째...
무기력증과 오심으로 식사가 어려워 동내 병원에 가서 영양제를 투여했다.
구토나 손발 저림 같은 증상은 없었지만.. 위를 절제한지 1개월만에 하는 항암제는 아버지를 매우 힘들게 했다.
그날 저녁 항암제 복용을 못하셨다.

다음날 아침.. 겨우 1차례 약을 건너 띈것 뿐인데..얼굴이 많이 좋아지셨다.
아침에 다시 약을 드셨다.

그후 1주일동안 아버지는 밖에 나가시지 못하고 집에만 계셨다.
나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갈 기운이 없어서..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단백질 섭취하라는 얘기에 고기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지만..
가까이서 간호가 절실히 필요하다.
어머니는 교회일로 1주일에 3~4차례 집을 비우신다.
내가 일이 있어도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어 나갈 수가 없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병수발은 쉬운게 아니라 아내에게 부탁하기도 어렵다.
이런 시기에 가족이 뭉쳐서 어려움을 이겨내야할텐데.. 안타까움에 연속이다.

입안이 다 헐어서 마늘,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은 못드신다. 조금이라도 매우면 입안이 괴로워 못드셨다.

1차 항암이 끝나고.. 계획했던 여행이 무산되었다.
역시 나이때문인지.. 아버지는 매우 천천히 회복하셨다.
약을 안먹는 1주일중 후반에 가서야 겨우 기운을 차리고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해지셨다.

5월 27일 1주일만에 다시 2차 항암제 투약. 체중이 2Kg이 더 빠지셨다. 주치의가 아파서 대진하고 있었다.
대진한 담당의가 더이상 체중이 빠지면 곤란하단다. 야속하다. 매일 고기반찬에 입맛이 없으실까봐 특별식을 준비하는데
목넘김이 힘드시니 먹는게 줄고 보는 나도 괴롭다. 어머니는 아버지 간호보다 교회일에 더 매진하시고.. 친형은 이런 걸 알까?
갑자기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번에도 병원에서 5시간을 기다렸건만.. 대기 순번에서 밀려서
다음날 8시에 병원을 다시 찾아 1차로 투약했다. 또 7시간이 흘렀다.
3시께 투약이 끝나고 약간의 어지러움증을 호소하시는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너무 맑은 날씨가 야속했다. 곧있으면 아버지 70순 생신이신데.. 계획했던 여행도 무산되고..

주말이 지나고 아버지는 또 축 처지고, 또 식사를 못하시기 시작했다.

6월 2일은 아버지의 70세 생신이셨다. 손님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누실때까지만 해도 힘내서 앉아계셨는데..
저녁이 되자 다시 가라 앉으셨다. 특별식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핀잔만 들었다. 아버지가 또 내 눈치를 보시는 거 같다.
마음이 더 안쓰럽다. 전날 친척들에게 응원 전화 부탁한다고 문자를 보내려고 생각했다가 말았다. 지금도 저렇게 기운 없으신데.
전화받으시면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 같았다. 항구토제를 복용하시면서 조금 회복하시나 싶더니 그 날 저녁부터 항암제를 또 못드셨다.

3일 아침부터 나를 급하게 찾으셨다. 혀에 두껍게 백태가 끼었다. 아침에 동내 병원에 찾아갔다. 내과의를 만나고 또 한움쿰 약을 받아왔다.
아버지가 드시는 약만 해도 벌써 5종류가 넘어가는 거 같다. TS-1(3알), 철분제, 항구토제(4알), 설사약, 당뇨약, 세비보정, 항진균제, 구강청정제, 안약 2종.... 약값도 만만치 않다. 정말 수술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입안부터 목속까지 뻣뻣하고 백태가 끼는 건 진균때문이라며 항진균제를 처방해주셨고
다음날 4일부터  TS-1을 다시 복용하셨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빨래줄에 걸어놓은 젖은 빨래마냥
축 처지셔서 식사도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만든 음식에 짜증을 내신다. 마늘 넣지 말라고 하셨는데..
5일 오후 약 복용을 중단하시겠단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주치의 만나서 항암 치료를 포기하자고 하신다. 투정이실텐데..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 고통의 종류나 정도를 모르니 내가 하려는 말이 내가 생각해도 진정성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머릿속에서만 맴돌게 놔두고..
어깨를 주물러드렸다.

너무 괴롭다고 하신다.
"50대만 되도 오래살려고 발버둥 칠텐데..지금 내가 얼마나 더 살거라고.. 됐다.. 이제 그만하자.. 너무 힘들다.. 이번주에 계속 못먹었다.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어.."
메아리가 가슴을 저미는 것 같다. 그리고 목살 아래 주름이 더 앙상하게 처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주물러드리는 어깨와 등에.. 가죽이 늘었다 줄었다 한다.
근육이 만져지지 않고 가죽만 문지를 거 같다. 지난주 마사지해드릴 때보다 살이 더 빠지신것 같았다.
다음주에 주치의를 만나 약을 좀 줄여달라고 얘기 해보자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양제 투여를 위해 응급실을 찾았다.
바지를 잡으니 그냥 발목까지 흘러 내려 버린다. 허리가 5~6인치는 줄어드신것 같다.

힘내시라고.. 다 컷지만.. 쑥스럽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면서 노래를 불러드렸다.
아버지.. 힘내세요.